비스바덴 5

6 - 묘지 옆의 학교

[봄과 함께 찾아온 새학기의 시작] 삶에 대해서 사색하기에는 묘지만큼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처음 하이델베르크를 여행했을 때 주변의 산책할만한 곳을 묻는 나에게 민박집 사장님은 공동묘지를 알려주었다. 순간 한국의 공동묘지가 떠올라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사장님의 표정을 보니 농담은 아닌 듯했다. 그녀는 독일 공동묘지가 '사색을 하기 좋은 곳'이라며 덧붙였다. 다음날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공원으로 향하던 중 문득 호기심이 들어 새벽안개가 채 가시기 묘지로 발길을 향했다. 어젯밤 들었던 설명을 기억해내며 오분쯤 걸어가니 낮은 철문으로 닫혀있는 공동묘지가 눈에 들어왔고 묘지의 낮은 돌담 너머로 조문객들이 몇명 보였다. 녹이 슬어있는 초록색 철문을 손으로 살며시 밀자 문은 삐그덕 소리를 내며 묘지 안쪽으로 열렸..

독일 견문록 2021.03.10

5 - 소파 좀 빌려줄래? (2)

[다시 소파를 빌리러 베를린으로] 기차로 다섯여 시간을 달려 도착한 베를린 중앙역은 수도인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안에는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든 직장인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쇼핑을 하는 젊은 엄마들, 배낭을 들고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로 가득했다. 플랫폼에 서있는 기차들은 이름만 들어도 이미지가 떠오르는 유명한 유럽의 여러 도시들로 승객을 실어 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스트와 만나기로 한 날짜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기에 미리 예약해놓은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로 발길을 옮겼다. 도착해보니 내가 묵게 된 곳은 규모는 여느 소규모 게스트하우스와는 달리 호텔만큼 큰 건물이었다. 결제한 금액을 생각해보니, 순간 이곳이 맞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카운터에서 예약정보를 확인하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독일 견문록 2021.02.11

4 - 소파 좀 빌려줄래?

[겁도 없이 시작한 카우치서핑과 유럽여행] 독일어 어학수업은 부활절을 며칠 앞두고 종강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부활절은 우연히 그날 마침 교회 앞을 지나가게 되면 장식된 삶은 달걀을 받게 되는 날이었지만, 이곳에서 부활절은 독일인들이 몇 주전부터 집 밖과 안에 부활절 장식을 하고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그리고 단순 하루 동안의 교회 행사가 아니라 독일 전역에 걸쳐 며칠간의 부활절 휴일도 이어진다. 나 또한 다른 의미에서 독일어 수업의 종강과 부활절 휴일을 기다려왔다. 바로 독일에서 처음 다른 도시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해 놓았기 때문이다. 행선지는 하이델베르크였고 동행인은 없었다. 무뚝뚝해만 보이던 독일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종강 겸 오스턴(부활절) 선물이라며 토끼 모양의 초콜릿을 나누어주었다. 수..

독일 견문록 2021.02.03

2 - 남자 셋 여자 둘

[우연히 같은 플랫에 살게 된 다섯 사람의 이야기] 이제는 룸메이트가 된 한 살 어린 한국인 친구와 나는 조심스레 이민가방을 끌고 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오른쪽에는 작은 샤워룸이 딸린 공동화장실이 하나 있었고 왼편에서는 커튼 대신 오렌지색과 파란색 매트리스 커버가 걸려있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마침 빛이 방안을 밝혀주고 있어 방안의 모든 것들이 오렌지색과 파란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앞으로 6개월간 함께 사용하게 될 방은 대략 여섯 평 정도로 다른 1인실 방보다는 현저히 컸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이렇게 큰 방의 경우 미국군 장교가 사용했던 방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기숙사를 신청했을 때 우리는 얼마간의 사용료를 더 내고 가구들을 포함하는 옵션을 추가했었다. 그 결과로 우리 방안에는 각..

독일 견문록 2020.10.15

1 - 독일 첫 입성, 첫인상

[낯선 땅에 둥지틀기] 그러나 독일로 교환학생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독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디자인 수업에서 배운 독일의 대표 디자인 양식인 바우하우스(Buahaus)와 브라운(Braun)사가 전부였다. 그 외엔 역사적으로는 일본과 같이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었다는 무거운 얘기가 있겠고 밝은 쪽은 한국처럼 분단국가였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그 후 유럽의 대표적인 수출국으로 경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었다. 또 뭐가 있을까, 맥주? 소시지? 마인강의 기적? 게르만으로 불렸던 백인들이 많이 사는 나라? 독일이 나의 제1 지망 국가였던 것은 단지 유럽의 중앙에 있어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지리적 조건 때문이었다. 무려 아홉 개의 국가들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독일은 한반도에..

독일 견문록 2020.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