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함께 찾아온 새학기의 시작]
삶에 대해서 사색하기에는 묘지만큼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처음 하이델베르크를 여행했을 때 주변의 산책할만한 곳을 묻는 나에게 민박집 사장님은 공동묘지를 알려주었다. 순간 한국의 공동묘지가 떠올라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사장님의 표정을 보니 농담은 아닌 듯했다. 그녀는 독일 공동묘지가 '사색을 하기 좋은 곳'이라며 덧붙였다. 다음날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공원으로 향하던 중 문득 호기심이 들어 새벽안개가 채 가시기 묘지로 발길을 향했다. 어젯밤 들었던 설명을 기억해내며 오분쯤 걸어가니 낮은 철문으로 닫혀있는 공동묘지가 눈에 들어왔고 묘지의 낮은 돌담 너머로 조문객들이 몇명 보였다.
녹이 슬어있는 초록색 철문을 손으로 살며시 밀자 문은 삐그덕 소리를 내며 묘지 안쪽으로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조심스레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자 안개 사이로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묘지 중앙으로 몇 걸음을 더 나아가자 마치 잘 정돈된 공원같이 보이는 풍경이 나왔다. 그 안에는 다양한 모양의 비석이 줄을 맞춰 자리 잡고 있었고, 거의 모든 비석의 앞에는 관 크기 정도의 땅 위에 꽃밭이 정성스럽게 일구어져 있었다. 인물 조각상이나 생전 함께한 반려동물의 작은 무덤이 함께 있는 사자의 쉼터도 보였다. 묘지 중간중간에 놓여있는 벤치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조문객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때마침 구름을 가르며 한줄기 햇살이 비석들 위로 쏟아졌다.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비석의 맞은편 벤치에 잠시 앉았다. 하나의 비석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고작 수일을 차이로 생을 마감한 부부의 묘지 앞이었다. 밝은 회색 대리석 비석 위에는 부부의 이름과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 날짜가 적혀있었다. 비석 주인의 삶에서는 사실 탄생일과 사망일보다 분명 더 의미 있거나 기억에 남는 날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처음 만난 날, 아니면 결혼으로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던 날 혹은 첫아기가 태어나던 날일 수도 있다. 두 날짜를 이정표 삼아 나는 그 두 날짜 사이의 시간들을 상상해보았다.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 평생을 일한 끝에 그들은 한대의 집과 두대의 자동차 정도를 일구었을 것이다. 두 명의 자식을 낳고 다섯 명의 손자를 보고 세 마리의 반려견을 돌보아주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생의 마지막 숨을 내 쉰 후에 그들은 비석의 새겨질 두 번째 날짜만을 남기고는 이렇게 잠들어있다. 해가 다시 구름 뒤로 숨자 그 왼편에 있던 너무나 젊은 나이에 가족들 곁을 떠나야 했던 환한 웃음을 갖은 젊은이의 비석이 보였다. 그의 묘지 주변에 빽빽이 심어진 만개한 하얀색 히야신스 꽃은 역설적으로 가족들의 비통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작은 공원 정도의 규모의 이 묘지에는 태어남과 함께 한 번의 휴식도 없이 펼쳐지던 연극이 막을 내리고 뒤로 물러선 배우들처럼, 비석들이 묘지의 낮은 담벼락을 막을 삼아 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삶이라는 무대에서 영영 사라졌기에, 그들의 가족과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와 매년 꽃을 심고 가꾸며 그들의 생전 모습을 추억하는 것은 아닐까. 묘지는 이렇듯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는 교감의 장소인 것이다.
우연처럼 나의 새로운 캠퍼스도 묘지 옆에 위치해 있었다. 디자인과 미디어, 인포마틱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여있는 작은 캠퍼스는 비스바덴 도시 외곽의 북쪽 묘지(Nordfriedhof) 주변에 위치해 있었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십 분정도 낮은 언덕을 오르면 학생들은 버스의 종점인 북쪽 묘지 정류장에 내린다. 정류장 오른쪽 옆에는 보육원과 유치원이 있었고 정면에는 크고 오랜 그리스 양식으로 지어진 묘지의 입구가 있다. 약 8만 구 이상의 묘가 모여있는 거대한 이 묘지를 지나 왼쪽으로 오 분여 간을 더 걸으면 캠퍼스가 나온다. 버스에서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듯한 묘지 입구 주변의 꽃나무에서는 어린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정류장 옆 보육원의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곳에 병원마저 있었으면 완벽하게 탄생과 교육 그리고 병과 죽음까지 모아 놓은 인생의 축소판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같은 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하지만 조금은 앳되 보이는 무리를 따라 걷다 보니 앞으로 한 학기 동안 다니게 될 학교 캠퍼스가 눈에 들어왔다. 주차 안내원 아저씨가 앉아있는 입구를 지나면 곡선으로 나있는 길의 왼쪽과 정면에 낮은 캠퍼스 건물들이 보인다. 길의 오른쪽에는 줄무늬 해먹이 걸려있는 사과나무와 잔디밭이 작은 연못을 따라 펼쳐진다. 중앙에 위치한 주차장을 가로질러 수많은 자전거가 놓여있는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쓰는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중 한 면이 모두 큰 유리창으로 만들어진 건물은 깔끔하면서도 정돈된 느낌을 주었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콘크리트 마감이 된 벽과 중앙에 위치한 크고 긴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 미리 수강신청을 해놓은 수업이 열리는 강의실로 들어섰다. 수업시간이 되자 편한 옷차림을 한 중년의 남자 교수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메고 온 백팩을 책상 위에 놓아두고는 서둘러 강의 준비를 시작했다. 서로 수다를 떨던 학생들은 웅성거림을 멈추는 듯했으나 몇몇은 여전히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치 고등학교에 온 것처럼 조용하고 엄숙한 한국의 대학과 달리 이곳의 학생들은 자유분방해 보였다. 강의 준비를 마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려다 구석에서 유독 긴장한 채 앉아있는 교환학생들인 우리를 발견했다. 그는 독일어로 몇 마디를 건네는 듯하더니 이내 우리가 독일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유창하면서도 분명한 독일 억양의 영어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몇 마디가 오간 후 그는 미소를 지으며 수업에 참가한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여느 한국에서의 첫 수업처럼 본인 소개를 한시간 정도 하겠구나 하는 내 예상과 달리 독일인 교수는 일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짧게 본인 소개를 한 후 바로 이어서 수업의 목표와 학기가 끝날 때쯤 완성될 본인이 기대하는 결과물의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노트북에 열심히 필기를 하는 학생도 몇 있었고 핸드폰에 간단히 메모하는 학생도 있었다. 수업의 대부분은 영어로 진행되었지만 수업에 마지막에는 과제나 전달사항을 독일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독일어로 안내해주었다. 수업내용과 과제물은 한국에서 해오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나 발표와 비평의 형식은 달랐다. 발표시간마다 강의실 앞쪽의 연단에서 발표를 하고 마지막으로는 교수님의 의견과 수정 방향을 들었던 한국과 달리, 독일의 디자인 수업에서는 자리에 앉아 모두를 향해 자신의 과제물을 발표하고 비형 또한 교수뿐만이 아닌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함께 피드백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교수님의 경력과 취향을 고려해 교수님과 단둘만 의견을 조율하면 됐었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주제에 맞는 결과물을 향해 작업해야 했다. 성적 또한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서로를 견제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래된 묘지 옆 건물에서 앞으로 배우게 될 디자인 수업이 어쩐지 번화가에 위치한 큰 대학 캠퍼스의 높은 건물에서 동기, 선후배들과 경쟁하며 배우던 디자인보다 조금 더 기대되기 시작했다.
기숙사에도 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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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독일, 이방인으로 다시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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