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견문록

4 - 소파 좀 빌려줄래?

비바제인 2021. 2. 3. 20:47

[겁도 없이 시작한 카우치서핑과 유럽여행]

 

독일어 어학수업은 부활절을 며칠 앞두고 종강되었다그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부활절은 우연히 그날 마침 교회 앞을 지나가게 되면 장식된 삶은 달걀을 받게 되는 날이었지만이곳에서 부활절은 독일인들이  주전부터  밖과 안에 부활절 장식을 하고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그리고 단순 하루 동안의 교회 행사가 아니라 독일 전역에 걸쳐 며칠간의 부활절 휴일도 이어진다 또한 다른 의미에서 독일어 수업의 종강과 부활절 휴일을 기다려왔다바로 독일에서 처음 다른 도시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해 놓았기 때문이다행선지는 하이델베르크였고 동행인은 없었다무뚝뚝해만 보이던 독일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종강  오스턴(부활절선물이라며 토끼 모양의 초콜릿을 나누어주었다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에서 미리 싸온 빵과 짐가방을 들고 비스바덴 중앙역으로 향했다  시간 동안 하이델베르크를 향해 철길을 달리는 기차에 앉아서 독일어 선생님이  초콜릿을 먹으며 숙소의 위치를 재차 확인했다.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단 하루라도 혼자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학교의 디자인학부에서 교환학생을 왔다는 이유가 나와 룸메이트의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한국에서 특별한 친분은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 달여간 함께 무난하게 생활해 왔었다. 같이 아침식사를 하기도 하고 종종 장을 보고 근교로 같이 여행 갈 정도의 사이로 어느 정도 가까워지긴 했지만, 칸막이도 하나 없는 방에서 근 한 달여간을 함께 생활하다 보니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습관은 사람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래서 작은 습관이 서로 맞지 않음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의 성격도 견딜 수 없어진다. 그렇게 소리 없는 마찰들이 쌓여갈수록 나만의 공간이 절박해졌다. 기차를 타면 직행으로 짧은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는 도시를 물색하니 <하이델베르크>가 눈에 띄었다. 특히 고성을 배경으로 한 도시 풍경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목적지를 결정하니 숙소와 교통편을 예약하는 것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예약을 마치고 나서야 그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유명하다는 맛집과 둘러봐야 할 관광지 몇 곳을 찾고 나니 문득 혼자 하는 여행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혼자이고 싶어 떠나는 여행에서 혼자 있기가 두려운 마음이랄까. 

그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맥락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다 발견한 사이트가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이었다. 카우치서핑은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플랫폼이다. 잠자리(카우치)를 빌려주는 사람을 '호스트'라고 하고 잠자리를 빌리는 사람을 '서퍼'라고 하는데, 에어비엔비와는 다르게 숙박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사이트를 자세히 살펴보니 숙박 외에도 간단히 서로 만나 번개모임 형태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능했다. 프로필을 간단히 작성하고 여행 계획을 올리니 짧은 시간에 굉장히 많은 호스트들에게 연락이 왔다. 그중 불순한 목적을 갖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사람들을 제외하니 단 한 명의 호스트가 선택지에 남았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유학하는 중국인 또래 남학생이었다. 사이트 내에서 몇 번의 메시지를 통해 간단하게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문득 낯선 나라의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과 만난다는 생각을 하니 덜컥 겁이 들긴 했지만 그도 나와 같이 독일에 거주하는 이방인일 뿐이라 생각하며, 애써 걱정을 떨쳐내었다.  

규칙적인 소음을 내며 이동하던 기차는 이내 숨을 고르며 속도를 낮추더니 정류장에 멈추어 섰다. 고개를 들어 바깥을 내다보니 파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적힌 'Heidelberg Hbf(하이델베르크 중앙역)'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기차 안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다이어리와 늘어져있던 이어폰 줄을 다시 감아 빠르게 가방에 넣고는 하차를 하려는 사람들 뒤에 따라섰다. 기차는 한숨을 쉬듯 사람들을 플랫폼에 뱉어냈다. 네모상자 모양의 역사를 벗어나자마자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중앙역 앞의 거대한 철제 조형물이었다. 'Hammering Man'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조형물은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작품인데, 한국에서는 광화문 근처의 어느 보험회사 건물 앞에 똑같이 생긴 조형물이 볼 수 있다. 다소 생경한 이름의 작가의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순간 하이델베르크에서 광화문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기 때문이다. 밤낮과 주말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광화문에서 보았던 그들을 감시하듯 서 있는 조형물과, 낭만의 도시라는 명성과 어울리지 않게 구시가지를 조금 벗어나면 공장과 회사 건물이 이어지는 하이델베르크에 서 있는 그 조형물의 또 다른 분신은 마치 나에게 어디에 있던 벗어날 수 없는 '문명의 그림자'를 상징하는 듯했다. 하이델베르크가 삶의 터전인 사람에게 이곳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유럽의 대표적인 낭만의 도시로 불리는 이곳이 여전히 낭만적일까? 숙소로 걸어가는 20여 분간의 시간 동안 잠시 독일에 오기 전의 나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래, 몇 번의 선택으로 나는 지금 얼마나 다른 곳에 있는가. 생각이 끝맺음 없이 사방으로 헤엄치려 할 때 눈앞에 민박집이 나타났다. ‘딩동’하고 벨을 누르니 친숙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선한 인상의 민박집 사장님은 나를 반갑게 환대해 주었고 궁금하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짐을 풀고 방 밖으로 나가자 사장님은 시내로 가는 길과 이 주변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당시의 구글맵은 한국 안에서보다는 해외에서 더 쓸만했지만, 도보 경로 안내와 대중교통 정보는 지금처럼 정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독일에서 구입한 나의 유심카드(SIM-Karte)는 인터넷 용량도 적은 데다 인터넷 속도는 한국에 비해 상당히 느렸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약속 장소가 있는 곳까지의 대중교통 정보와 주위에 있는 건물들을 핸드폰과 공책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기록해야 했다. 약속 장소는 하이델베르크의 구시가지 잎 구의 갤러리아라는 쇼핑센터 앞이었다. 숙소에서 지갑과 신분증, 카메라를 챙겨 길을 나섰다.

전체적으로 겨울에 비해 기온이 올랐다지만 코끝을 찡하게 하는 매서운 바람은 마치 한국의 꽃샘추위를 연상케 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주택가에 위치한 민박집 주변을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를 향해 석양을 등에 지고 걷기 시작했다. 구시가지가 다가올수록  빛나는 간판의 수만큼 사람들도 늘어났다. 도시를 빼곡히 메우고 있는 상점과 가로등의 인공조명 아래는 가족과 연인 단위의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들떠 보이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혼자 고단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 인 것 같았다. 약속 장소인 쇼핑센터는 구시가지의 시작점에 관문처럼 서있었다. 나는 사람들과는 조금 떨어져 앉아 그와의 약속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되자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고 주변을 둘러보자 먼치에서 그가 보였다. 그는 프로필 사진과 똑 닮아있었다. 약간은 낡은 옷에 순박해 보이는 웃음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그는 내가 가고 싶어 하는 레스토랑에 흔쾌히 같이 가 주었고 나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8년이 지난 지금 그와의 대화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는 것과 내내 사진을 찍어주었다는 것은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나는 민박집 언니와 연락을 하며 숙소로 향할 채비를 했다. 그는 내 숙소 앞에서 다음날에도 일정이 있으면 함께해 주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를 보냈다. 방에 들어와 하루를 갈무리해보았다. 만약 용기를 내지 않았으면 오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독일에서 보내는 육 개월은 사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몇 가지의 물음을 일기장에 남겨놓고 잠에 들었다.


비스바덴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짧았던 이틀간의 여행을 돌아보았다. 일탈 같은 여행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새로운 여행의 시작같이 느껴졌다.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다시 목적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부활절 휴일이 지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기까지는 오육일 정도가 남아있었다. 등록금과 방값은 오자마자 처리했으니 생활비만 아껴 쓴다면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숙소는 카우치서핑으로 해결하면 경비에 큰 부담을 덜을 것이었다. 오랜 검색 끝에 다시 대략 6명의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누우니 그제야 여행의 무게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점심때까지 카우치서핑 사이트에서 확인을 해도 긍정적인 답변은 오지 않았다. 기숙사 친구들에게 사정을 말하니 독일인들은 주로 부활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때문에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아직은 짧은 독일의 하루를 알리듯 해가 일치감치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때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냈던 L이었다. L은 베를린에 사는 독일인 여학생으로 다른 남학생과 플랫을 셰어 한다고 했다. 짧으면서 경쾌한 문체로 그녀는 나를 베를린으로 초대했다. 메시지에 답장을 하자마자 다시 여행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3박 4일의 조금 더 길어진 일정을 수행할 일행은 역시 나 혼자뿐이었다.

이튿날 다시 비스바덴 중앙역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버스가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도로 위는 텅 비어있었다. 알고 보니 그날은 부활절 3일 전의 Karfreitag(성금요일)이라는 독일의 공휴일로 모든 상점은 휴업하고, 대중교통마저도 제한적으로 운행되었다. 기숙사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탓에 택시를 잡으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고, 게다가 주머니 사정도 택시를 타기엔 빠듯했다. 가뭄에 콩 나듯 만나기 힘든 행인조차 다음 버스는 약 한 시간 후에나 올 것이라 했다. 하지만 기차 출발 시간이 2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대로 어물쩡거리다가는 백유로 훌쩍 넘는 기차값을 날려버릴 것임이 분명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지체 없이 엄지손가락을 차도로 흔들며 중앙역으로 태워다 줄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를 보며 웃는 사람은 많았지만 차는 쉽게 멈춰 서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해지자 이제는 창피할 것도 없다 싶어 더 적극적으로 도로 위를 지나가는 차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절박한 웃음이 창백하게 일그러지려 할 때, 드디어 차 한 대가 속도를 늦췄다. 그 안에는 한 중년부부가 앉아있었다. 어쩐지 심드렁해 보이는 아저씨 옆의 발랄한 웃음의 아주머니는 영어로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여보 우리는 급할 것 없잖아? 들렸다 가자" 아저씨는 백미러로 나를 힐끔 보고서는 고갯짓으로 차에 타라는 시늉을 했다.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차 안에서 그들에게 대략의 사정을 설명한 후 중앙역으로 서둘러줄 것을 부탁했다. 시야에 중앙 역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숨을 몰아쉬듯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차에서 총알처럼 뛰쳐나가 기차를 향해 뛰었다. 기차가 떠나기 1분 전 비로소 자리에 앉아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육 개월 동안 다섯 번을 더하게 될 나의 카우치서핑의 시작이었다.

 

 

독일어 선생님께 부활절 선물로 받은 토끼 모양 초콜릿
나의 첫 독일 여행의 목적지,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 성 안에서 마신 글루바인과 브렛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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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독일, 이방인으로 다시 서기

한국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다 어느 날 마음이 펑하고 터져버린 저자는 문득 새로운 경험을 찾아 독일로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어렵게 찾은 보금자리에 들어선 순간 남자들이 우글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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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비바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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