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견문록

Prolog - 마음이 펑하고 터지는 날

비바제인 2020. 9. 30. 17:34

[독일 교환학생에서 유학생으로, 그리고 이민자가 되어버린 이야기의 시작]

 

2013년 홀로 베를린을 여행하던 어느 날, 베를린 돔 앞의 풍경

 


Um zu begreifen, daß der Himmel überall blau ist, braucht man nicht um die Welt zu reisen.      

                                                                 
- Johann Wolfgang von Goethe- 


하늘이 푸르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 여행을 할 필요는 없다.

- 요한 볼프강 본 괴테 -


괴테의 말이 맞다. 그 당시 내가 일을 하고 있던 서울의 하늘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공허한 그날의 하늘의 색은 더는 푸르지 않았다.

2012년 가을 대학교를 휴학한 지 일 년이 조금 지난 어느 오후, 나는 점심식사를 끝내고 일찌감치 회사로 돌아갔다. 세 번째로 인턴십 생활을 하게 된 회사는 종로에 당당하게 서있는 회사들 중 하나였다. 퇴근 후 깜빡 잊고 회사 명찰을 메고 친구를 만나도 부끄럽지 않은, 아니 그 명찰의 주인을 우쭐하게 하는 그런 회사였다. 하지만 나는 임시 명찰을 잠시 들고 일을 하다가 다음 인턴이 오면 건네주어야 하는 인턴십 학생이었고, 직장 상사들의 친절한 웃음 속에서도 너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기가 일수였다. 그날도 “제인 씨, 시간 있지? 이거 빨리해서 내 자리로 부탁해.”라며 상냥하게 웃는 상사의 손 끝에서 툭 던져진 일거리와 내가 있다는 걸 잊은듯한 대화들이 사무실에 공허하게 울리는 그런 날이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뒤편의 신입 정직원은 사무실에 둘만 남겨질 때면 종종 내게 상사들의 험담을 하곤 했다. 그건 결코 나를 신뢰해서 터놓는 마음의 소리가 아닌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인턴학생의 목소리는 사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때문이라는 것을,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나에게 마음을 터놓게 했다는 것을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그녀는 종종 그 외에도 자신의 실수를 나에게 떠 넘기고는 했다. 그러면 상사들은 “그래 인턴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지” 하며 말을 비꼬았다. 부서의 막내였던 우리 둘은 점심시간이 막 끝날 즈음에는 주로 제일 먼저 들어와 업무상 이메일을 처리하거나 협력사와의 일정을 조절하고는 했었다.

그날은 유독 상사들이 커피를 사러 간다, 화장을 고친다 하며 자리를 오래 비워두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 자리에서 나지막이 욕설이 들려왔다. 전혀 놀라지 않았지만 사뭇 놀란 척하며 뒤를 돌아본 순간 그녀는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다가왔다. 그녀가 했던 말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사들의 험담을 할 때 보다 약간 목소리가 격양되어 있었다는 것과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은 생생하다. 아, 그리고 그 일이 나와 무관하며 심지어 그녀 자신의 실수였다는 것도 말이다. 일 년 동안의 인턴십 생활 중 나는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사실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인턴십을 학생은 화를 내서는 안 되는 존재였었고, 그건 모든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당연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 무언의 규칙을 깨고 말았다. 나의 마음이 펑하고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순간 나의 얼굴에는 그동안의 소외감, 무안함 그리고 목소리가 없었던 시간의 설움들이 분노로 변해 또렷히 나타났다. 그것을 목격한 그녀는 놀란 듯 말 한마디도 없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인턴십이 끝나는 날까지 단 한마디의 욕설도 그녀에게 듣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 참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가 눈치챘기 때문이다. 인턴십이 끝나갈 즈음에 술을 사준다고 불러낸 그녀는 처음 보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내용은 평소 그녀의 무례한 태도와 다름이 없었다. 자신은 이곳에 오래 남아 회사 생활을 해야만 하는데 너는 잠깐 있다 갈 사람이 않느냐 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술김에 나에게 사과했다. "제인씨 미안해, 그래도 나 이해하지?" 나는 용서를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용서는 그녀의 사과와 동시에 이미 전제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괜찮아요, 그럴 수밖에 없죠. 저는 떠날 사람이니까요.



나보다 한 살 많은 뒤편의 신입 정직원은 사무실에 둘만 남겨질 때면 종종 상사들의 욕을 하곤 했다. 그건 결코 나를 신뢰해서 터놓는 마음의 소리가 아닌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인턴학생의 목소리는 사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나에게 마음을 터놓게 했다는 것을. 그녀는 종종 그 외에도 자신의 실수를 나에게 떠 넘기고는 했다. 그러면 상사들은 그래 인턴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지 하며 말을 비꼬았다. 부서의 막내였던 우리 둘은 점심시간이 막 끝날 즈음에는 주로 제일 먼저 들어와 업무상 이메일을 처리하거나 협력사와의 일정을 조절하고는 했었다. 그 날은 유독 상사들이 커피를 사러 간다 화장을 고친다 하며 자리를 오래 비워두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 자리에서 나지막이 욕설이 들려왔다. 전혀 놀라지 않았지만 사뭇 놀란 척하며 뒤를 돌아본 순간 그녀는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했던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상사들의 험담을 할 때 보다 약간 목소리가 격양되어 있었다는 것과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 이외에는. 아, 그리고 그 일이 나와 무관하며 심지어 그녀 자신의 실수였다는 것을. 일 년 동안의 인턴십 생활 중 나는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아니 어찌 화를 낼 수가 있을까? 인턴십을 하고 있는 나는 화를 내서는 안 되는 존재였었고, 그건 모든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당연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그 무언의 규칙을 깨고 말았다. 그 날 나의 마음은 펑하고 터졌다. 그동안의 소외감, 무안함 그리고 목소리가 없었던 시간의 설움 모든 것이 나의 얼굴에 순간 나타났다. 흠칫 놀란 그녀는 말 한마디도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다시 사무실의 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천사 같은 얼굴과 목소리를 되찾았다. 그 후로 인턴십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단 한마디의 욕설도 그녀에게 듣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 참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가 눈치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턴십이 끝나갈 즈음에 술을 사준다고 불러낸 그녀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로는 자신은 이곳에 오래 남아 회사 생활을 해야만 하는데 너는 잠깐 있다 갈 사람이 않느냐 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술김에 나에게 사과했다. "제인씨 미안해, 그래도 나 이해하지?" 나는 용서를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용서는 그녀의 사과와 동시에 이미 전제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괜찮아요, 그럴 수 밖에 없죠. 저는 떠날 사람이니까요. 


그녀와의 일은 사회에서의 나의 자리와 앞으로 겪을 일들을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빨리 알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는 그녀에 대해 그 어떤 개인적인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그녀 또한 힘들었겠지 싶은 측은지심이 들뿐이다. 어쩌면 내 인생의 반환점이 되었던 날이 아닐까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학교와 회사가 전부가 아닌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더 이상 양반댁 허드렛일 하는 기분으로 일을 하기도, 지친 마음을 갖고 학교로 바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집까지 운이 좋으면 한 시간, 길이 막히면 두 시간까지 걸리는 남산터널을 수없이 지나며 숨 막히는 일상의 땀냄새로 가득한 버스 안에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보았다. 인턴생활 동안 모은 돈이 얼마, 남은 학기가 몇..., 그래 동기 중 누구는 교환학생을 다녀왔다던데? 불현듯 한 학기 전 교환학생으로 유럽이나 호주 등을 다녀온 친구들이 생각났다. 고민은 짧았고 실행은 빨랐다. 우선 회사 근처의 영어 회화 학원을 등록했다. 퇴근 후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서 끼니를 때우고는 바로 두 시간짜리 수업을 들었다.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자발적으로 하던 잔업은 그만두었고, 정시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제인 씨 벌써 가?” “약속 있나 봐?” 또는 “요즘 친구들은 뭐 우리 때랑 같을 수 없지.” 뒤통수엔 가시 돋친 말들이 따라다녔지만 더 이상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았다. 머릿속엔 ‘떠나야 한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되도록 한국에서 먼 곳 그리고 한국과 다른 하늘을 갖고만 있을 것 같은 나라로 떠나고 싶었다. 첫 출근날 나를 환하게 비춰주던 종로의 푸른 하늘이 퇴근 후의 직장인들의 무거운 한숨소리로 물들어 노랗게 나를 짓이겨 올 때쯤 나는 합격 통지를 받았다.

 

나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아니었다. 낭만과 꿈의 장소가 아닌 도피처로서의 유럽 그리고 독일이었다. 그곳의 하늘의 색은 어딘가 이곳과는 다를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나는 그렇게 독일로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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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독일, 이방인으로 다시 서기

한국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다 어느 날 마음이 펑하고 터져버린 저자는 문득 새로운 경험을 찾아 독일로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어렵게 찾은 보금자리에 들어선 순간 남자들이 우글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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