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견문록

2 - 남자 셋 여자 둘

비바제인 2020. 10. 15. 19:07

[우연히 같은 플랫에 살게 된  다섯 사람의 이야기]

 

이제는 룸메이트가 된 한 살 어린 한국인 친구와 나는 조심스레 이민가방을 끌고 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오른쪽에는 작은 샤워룸이 딸린 공동화장실이 하나 있었고 왼편에서는 커튼 대신 오렌지색과 파란색 매트리스 커버가 걸려있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마침 빛이 방안을 밝혀주고 있어 방안의 모든 것들이 오렌지색과 파란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앞으로 6개월간 함께 사용하게 될 방은 대략 여섯 평 정도로 다른 1인실 방보다는 현저히 컸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이렇게 큰 방의 경우 미국군 장교가 사용했던 방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기숙사를 신청했을 때 우리는 얼마간의 사용료를 더 내고 가구들을 포함하는 옵션을 추가했었다. 그 결과로 우리 방안에는 각기 두 개의 침대와 책상 그리고 전 세입자가 놓고 간 옷걸이 선반 등이 놓여있었다. 우리는 의기투합해 창문에서부터 바닥, 화장실까지 한국에서 가져온 청소도구들로 방안 구석구석 묵은 때를 벗기기 시작했다.

약 두 시간 정도 소란스럽게 푸닥거리가 이어졌지만 방청소를 마치고 짐을 푸는 동안에도 플랫 안에선 어느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방청소를 마친 우리는 부엌을 살펴보러 함께 방을 나섰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공동부엌은 세로로 긴 형태였고 그 끝에는 큰 창문이 하나 있었다. 기역자로 놓인 조리대와 그 오른쪽에 재떨이가 놓인 4인용 식탁 그리고 세 개의 작은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부엌을 살펴보는 도중 플랫메이트 중 하나인 F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훤칠한 키에 비에 앳된 얼굴을 가진 F는 놀란듯 우리를 쳐다보다 이내 환한 미소와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교환학생은 아니었지만 우리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독일인 학생이었다. 더듬거리는 영어로 F와 통성명을 하는 사이 다른 방의 주인인 J도 부엌으로 들어왔다. 아프리카 출신의 J는 우리를 보자마자 쾌활하게 환영의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잠시 넷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두 개로 나뉜 기숙사 건물 중 우리가 있는 곳은 주로 독일인 학생들이 사용하고 에라스무스(Erasmus - 유럽 내 교환학생들을 일컫는 용어)로 불리는 교환학생들은 주로 다른 건물을 사용한다고 했다.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독일인들은 2인 1실을 사용하기를 꺼려했고 영문도 모르고 그 방을 신청한 우리가 교환학생임에도 이 건물로 입주하게 된 것이 아닐까하며 함께 추측해보았다. 한 학기만 있다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에라스무스 학생들과 달리 내국인(독일인) 학생들은 이곳에 보통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몇 년을 지낸다고 했다. F와 J도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지낸 지 꽤 된 상태였고 그래서인지 기숙사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대화의 소재가 떨어질 무렵 그들은 어리바리 서있는 우리에게 부엌 사용 규칙과 쓰레기 버리는 곳 그리고 우리가 사용할 냉장고 등을 안내해 주고는 다시 각자의 방 안으로 사라졌다.

F와 J가 돌아간 후 우리는 다시 부엌에 남아 우리의 공용 냉장고를 비롯해 집기들을 청소했다. 청소가 얼추 끝나고 다시 방 안으로 돌아가는 순간 마지막 플랫 메이트인 A와 그의 친구 B를 마주쳤다. 대충 봐도 190cm를 훌쩍 넘는 키와 위압적인 덩치를 갖은 B에 비해 A는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였지만 넓은 어깨와 양볼을 수북이 덮은 수염이 남자다운 인상을 주었다. 자칫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는 첫인상에 비해 둘은 어쩐지 수줍어하는 것 같았고 말을 길게 하지는 않았지만 따듯한 미소로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그 둘은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사이니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주저하지 말고 물어보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복도에 놓여 있던 커다란 신발들의 세 주인을 알고 나니 어쩐지 긴장이 풀렸다. 그들의 따듯한 미소와 환대가 불안감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함께 온 두 명의 한국인이 전부였던 나에게 든든한 이웃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긴장이 풀리자 급격히 허기가 몰려왔다. 한국에서 가져온 카레가루와 슈퍼마켓에서 사 온 감자와 당근으로 카레를 만들어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따듯해진 뱃속만큼 편안해진 분위기 속에서 기숙사의 첫 밤이 지나갔다.


독일의 봄학기는 4월에 시작지만 모든 교환학생들은 학기가 시작하기 전 이 주간의 독일어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삼월 중순에 열리는 독일어 수업 전까지는 아직 보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나는 함께 온 한국인 친구 둘과 우선 기본적인 물건을 구입하기로 했다. 독일 대학교의 학비에는 보통 시내의 모든 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권이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학생증은 어학수업이 시작할 때 받게 되어 있었고 몇 푼의 돈도 아껴야 하는 처지의 우리에게 왕복 6유로(한화 8천 원 정도)의 교통비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숙사에서 시내까지의 거리는 대략 왕복 10km였으므로 도보로는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거리를 나흘간 매일 걸어 다니며 이불과 베개를 비롯한 생활용품 등을 사다 날랐다. 하지만 당시의 이러한 고생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일이 설렜기 때문이다. 모든 게 익숙하고 단조로워 보였던 한국에서의 생활에 비해서 이곳은 모든 것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과 거리에서 보이는 독일어 문구와 낯선 간판들은 내가 집을 떠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새로운 교환학생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을 제외한 에라스무스 학생들은 주로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와 터키 등 따듯한 나라 출신이었고 영어를 쓰지 않더라도 서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문화적으로 공통점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상대적으로 빨리 친해지는 듯해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리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들은 먼 동양에서 온 우리에게 처음에는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통성명 등 몇 마디를 하고 나면 금세 말할 거리가 떨어지기 일수였다. 내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온 교환학생들보다 먼저 플랫 메이트들과 친해지게 된 이유이다.

하루는 운 좋게 시내 구경을 나갔다가 발견한 아시아 마켓에서 한국 식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나와 룸메이트는 그곳에서 간장과 고추장 등 기본적인 양념과 소주 몇 병을 사 왔다. 워낙 한식을 좋아하던 나는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에 들떴고 마침 F와 J가 플랫에 있었기에 문화교류차 룸메이트와 함께 요리를 해서 저녁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주로 함께 식사하며 친해지는 한국인들에 비해 독일인들은 서로 음식을 나눠먹지 않기로 유명하다.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도 점심시간에 서로 음식을 바꿔먹는다거나 나눠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F와 J는 우리의 저녁식사 초대에 놀란듯해 보였지만 플랫 안에 한국음식 특유의 냄새들이 퍼지기 시작하자 하나둘씩 나와 음식들을 구경하며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조리 준비를 도와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모여 한국음식을 나누어먹었고 서로 질문을 던지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늦게 기숙사로 돌아온 A는 부모님 댁에 갔다 오는 길이라며 와인과 케이크를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물었다. "누구 케이크이나 와인 먹을 사람?" 나는 그의 환한 미소에 눈을 뗄 수 없었다. A는 처음으로 음식을 나누어먹기를 권하는 독일인이었다.

남자 셋 여자 둘 총 다섯 명이 반년 동안 함께 사용했던 우리 플랫의 부엌
드디어 생긴 나의 작은 보금자리. 지금 보니 창문에 커튼 대신 걸어 놓은 침대보가 짠하다.

 


 

브런치에서 완성된 이야기를 먼저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brunch.co.kr/brunchbook/germanyandme

 

[브런치북] 독일, 이방인으로 다시 서기

한국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다 어느 날 마음이 펑하고 터져버린 저자는 문득 새로운 경험을 찾아 독일로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어렵게 찾은 보금자리에 들어선 순간 남자들이 우글우글

brunch.co.kr

 

독일어와 독일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글을 받아보시려면 블로그를 구독해주세요. 댓글과 공감은 꾸준히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비바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