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남자 친구와의 첫 대면 그리고 이 주간의 유럽여행]
드디어 그날이 와버렸다.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기 이 주 전 엄마는 23kg의 캐리어를 끌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행 시작 전부터 나에게는 설렘보다는 부담감이 더 컸다. 독일에서 지내는 6개월 동안 내가 배운 것은 유럽은 눈 감으면 코 베이기가 한국 못지않다는 것이었다. 그게 외국인이면 더더욱이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긴장하게 한 것은, 엄마에게 남자 친구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수많은 고민 끝에 나는 A를 엄마에게 소개하기로 결심했다. 엄마는 내가 처음으로 소개하게 될 남자 친구가 외국인이라는 것은 아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A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선 상태였고, 내가 독일에 교환학생을 갈 수 있게 가장 지지해 준 것이 엄마였기에 나는 엄마가 나의 선택을 존중해줄 것이라고 믿었었다.
공항에서 엄마를 기다리기를 한 시간, 드디어 게이트가 열리고 나오는 여러 사람들 가운데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나를 본 반가움보다는 비행에서 밀려온 피로감과 처음 오게 된 유럽에 대한 설렘 혹은 불안감으로 상기되어 보였다. 공항에서 나온 후 우리는 몇 마디 나눌 새도 없이, 바로 기차를 타러 내려가야 했다. 기차를 타고 삼십 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비스바덴 중앙역에서 기숙사까지는 두 번의 버스를 타고 가야 했고, 그 중간에 환승을 하는 정류장이 시내에 있었다. 때는 8월 초, 비스바덴에서는 매년 열리는 와인 페스티벌이 한창이었다. 나는 엄마의 긴장을 더 풀어줄 겸, 또 독일에 오는 것을 환영하는 의미로 와인 한잔을 하고 가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와인을 마시면서 조금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엄마에게 남자 친구의 존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와인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은 비스바덴 시청 앞 광장이었다. 와인 스탠드마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라인가우 지방(Rheingau Gebiet - 독일에서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지역)에서 생산된 화이트 와인 두 잔을 주문하고는 와인 스탠드에 서서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 하자, 나는 엄마에게 여기서 알게 된 좋은 친구가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에게 늦게 알려서 미안하지만, 그동안 나도 남자 친구와의 관계가 깊어질 것을 몰랐고 이제야 확신이 들어서 엄마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엄마는 상당히 놀란 듯했으나, 딱히 내색하지는 않았고 나는 그 틈을 타서 마침 기숙사에 있을 것이니 엄마가 괜찮으면 간단히 인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여행의 첫날부터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황당하다는 듯 나를 장난스럽게 노려보며 이야기했다.
"얘는... 공부하라고 독일에 보내 놨더니?"
"엄마는 참, 공부도 하고 남자 친구도 만났으니 두배 성실하게 보낸 거지"
버스에서 내려 기숙사가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엄마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A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곧 도착 예정이야. 짐 풀고 다시 연락할게'. 당시 A는 기숙사 안에 있었지만 내가 연락하기 전에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기로 약속했다. 마침 기숙사에 다른 친구들은 모두 방을 비운 상태였기에 기숙사에 들어섰을 때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다만 A의 방문 틈으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우선 나의 방 안으로 들어와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이내 술 한잔 후 생긴 허기를 달래러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기숙사 부엌으로 나왔다. 이때다 싶어 A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A가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들어왔다. A의 얼굴은 상기된 상태였다. 그는 간신히 미소를 지었지만 긴장감은 숨길 수 없어 보였다. 그는 영어로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A입니다. 저... 제인의 남자 친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엄마 또한 굉장히 당황한 듯 보였으나 이내 환하게 웃으며 A에게 짧게 간단한 영어로 답변의 인사를 건넸다.
"어... 안녕하세요. 제인이 엄마예요."
인사가 끝나자 부엌에는 다시 정적만이 흘렀다. 열어 놓은 창문 밖에서 한여름의 선선한 바람만이 멀뚱이 서있는 우리 세 사람의 사이를 망설임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지나가는 바람의 꼬리를 잡듯 엄마가 갑작스레 나에게 말했다.
"A는 저녁 식사했다니? 안 했으면 같이 먹자고 해. 만약 한국 음식도 괜찮다면 말이다."
그러면서 엄마는 만약 나의 남자 친구와 식사할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음식을 더 챙겨 왔을 텐데 하며 이전에 아무런 귀띔도 하지 않은 나를 나무라듯 쳐다보았다. 얼마 안 있어 기숙사 식탁에는 갓 데운 쌀밥과 김치, 김과 통조림 캔 몇 개로 이루어진 조촐한 한국식 음식이 차려졌다. A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주어진 음식을 깨끗이 먹어치웠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A가 굉장히 허기졌었나 보다 싶어 보였지만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A는 지금 나의 엄마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엄청 노력 중이라는 것을 말이다. 식사가 끝나자 긴 비행으로 피곤한 엄마와 내일 떠날 여행 준비를 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A가 나를 불러 세우며 자신이 실수한 것은 없냐고 걱정하며 자신이 너무 긴장한 상태였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내일 일정을 물어보았다.
"그럼 기차 타러 가기 전에 어느 정도 시간이 있네? 그럼 내가 비스바덴 구경시켜 드리고 기차역까지 차로 데려다주는 거 어때?"
"너무 좋은 생각인데? 엄마도 분명 좋아하실 거야. 고마워. 근데 너 내일 시간은 괜찮고?"
"너와 어머님을 위해 서면 당연히 낼 수 있지. 또 그러면 너를 몇 시간이라도 더 볼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는 첫 만남 때 보여주었던 미소를 다시 지었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엄마한테 그의 제안을 전했고, 엄마도 처음 본 딸의 남자 친구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다음날 우리는 준비를 마치고 기숙사 밖으로 향했다. A는 나와 엄마의 여행가방을 자신의 차 트렁크에 실었다. A의 차가 처음 멈춘 곳은 비스바덴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였다. 네로 베르그(Neroberg)는 비스바덴에서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데, A가 나와 한국인 친구들에게 야경을 보여준 곳 이기도 하다. 전경에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사자상이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고 비스바덴 시내를 엄마에게 구경시켜 드렸다. 그리고는 기차 시간에 맞추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다시 향했다. 우리는 중앙역에서 A와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A에게 살짝 작별의 키스를 하였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우리 엄마는 나의 당돌함에 적잖이 놀란 듯했지만 이내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A는 이어 엄마에게 두 팔을 벌리며 포옹을 하려 했고, 엄마는 쑥스러워했지만 그의 따듯한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렇게 A는 떠났고 엄마와 나는 단둘이 이 주간 유럽의 많은 도시들을 함께 여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뮌헨에 도착해 독일 전통음식과 맥주를 마셨고, 스위스에서는 마트에서 다양한 치즈들을 사서 와인과 곁들여 먹었다. 그리고 인터라켄의 풍경을 사진기에 담고, 알프스 산맥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채운 호수 앞 숙소에서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기차를 갈아타고, 새로운 도시를 캐리어를 끌고 누볐다. 파리에서는 길을 잃은 터에 근 10Km가량을 하염없이 걷다가, 친절한 프랑스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으며 시내를 구경하기도 했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구경하고 비 오는 정원을 함께 걷기도 했으며, 노을 지는 에펠탑을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 있기도 했었다. 하루 종일 걷다가 돌아온 숙소에서는 서로의 다리를 주물러 주며, 유럽의 맛없는 음식들을 흉보며 함께 컵라면을 먹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나는 그렇게 단둘이 처음 오랜 시간을 함께 있으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이상하게도 남자 친구에 대해 나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않았다. 그저 나만 남자 친구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야겠다는 강박감에 괜스레 종종 그의 칭찬을 하기도 했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대답은 했지만, 큰 호응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중 일은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인 영국에서 터졌다.
피카델리 거리에서 저녁에 레미제라블 뮤지컬을 보기로 한 날이였다. 이것은 오빠의 아이디어로, 영국까지 갔으니 엄마와 함께 뮤지컬을 보라는 것이었고 일인당 십만 원에 달하는 거금도 오빠가 지불했었다. 엄마는 여행 내내 오빠의 사려 깊음을 칭찬했고, 그것은 매일같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행 내내 엄마를 챙기고, 짐을 들고 세세한 계획을 짜고 안내한 나에게 돌아오는 칭찬은 없었다. 오빠는 여행에 동행하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엄마는 오빠를 칭찬했다.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에 일정을 매일 챙겨야 하는 부담감에 엄마의 이어지는 오빠에 대한 칭찬은 서운함으로 다가왔다.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하는 것은 나인데, 엄마는 함께 있지 않은 오빠와 여행을 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엄마와 단둘이 숙소에 있게 되면 어딘가 우리 사에에는 어색함이 흘렀다.
공연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기념품을 구경하기로 했다. 엄마는 기념품들을 볼 때마다 오빠 생각이 나는지 선물을 고르기 바빴다. 나는 엄마가 오빠의 선물을 고른다고 하니 나는 나대로 A와 몇 달 전 알게 된 A의 조카들에게 줄 선물을 둘러봤다. 내가 마침 아이들이 좋아할 선물을 보고 엄마에게 귀엽지 않냐고 물으니 엄마는 대답 대신 차갑게 쏘아붙였다.
"너는 정말 네 생각만 하는구나? 가족들 선물은 안 보고 벌써 남자 친구만 챙기는 거니?"
"아니, 엄마가 오빠 선물을 산다고 하니 나는 그냥 애들 생각나서 고르는 거지."
"그래 너 좋을 대로 하렴!"
엄마의 말은 싸늘한 대답은 나에게 비수로 날아와 마음에 꽂혔다.
"엄마, 엄마랑 여행하는 건 나야. 지난 이주 동안 단 한 번이라도 나에게 수고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
"그런 말을 꼭 해야만 아니? 그리고 너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나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엄마는 기분이 상한듯했고, 나도 나대로 화가 난 상태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준 후 서로에게서 약간 떨어져서는 피카델리 광장 근처의 관광지들을 걷고 있었다. 이내 뮤지컬을 한 시간도 안 남기고는 갑자기 엄마는 길거리에서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너무 서운하다며, 본인은 이 여행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거짓말이었고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됐건 우리는 엄마와 딸이었다. 그만큼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서로를 그리워한 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받았다. 나도 나대로 분에 차서 엄마에게 울면서 소리쳤다.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이럴 거면 오빠랑 여행을 오지 그랬어. 그러면 둘이 행복했을 텐데!"
"넌 정말 이기적이야. 나도 여기 온 걸 후회해."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그들을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렇게 엄마와 딸은 뮤지컬 공연을 앞두고 길거리에서 울며 서로에게 쌓였던 감정을 쏟아냈다. 서로에게 충분한 상처를 주고 나서야 우리는 진정되었고, 늘 가족들 사이에 싸움이 그러하듯 이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갔다. 하지만 그 유명한 뮤지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어떤 배우가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두 시간 내내 울고 있던 나와, 싸늘한 얼굴로 말없이 무대를 보고 있던 엄마의 표정뿐이었다. 긴 공연이 끝난 터라 둘 다 허기가 질만도 했지만 우리는 다시 아무 말도 없이 숙소로 돌아왔고, 서로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는 잠에 들었다.
여행이 끝나기 이틀 전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정해진 일정대로 아침 일찍 버킹엄 궁전으로 향했다. 버킹엄 궁전 앞 근위병 교대식은 엄마가 여행 내내 가장 기다려온 일이었다. 아무리 전날 엄마에게 기분이 상했다고 해서, 다시 보기 힘든 일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근위병 교대식을 보고 난 뒤에 엄마는 어제보다는 둘 다 화가 많이 누그러진 듯했다. 교대식이 끝나고 그 앞에 공원에 앉아 잠시 여름의 햇살을 쬐며 앉아있었다. 따듯한 햇살이 나의 마음도 조금 녹게 했다.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어제 엄마한테 그렇게 얘기한 거 미안해. 나는 엄마가 내가 고생한 건 보지 않고 오빠 얘기만 자꾸 해서 기분이 상했었어."
"그래, 알겠어. 나는 사실 나대로 솔직히 많이 놀랬어.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그게 외국인이라니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어. 게다가 네가 가족들보다 남자 친구랑 그 가족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많이 섭섭했어. 그래도 엄마 마음 알지?"
우리는 우리가 어제 그렇게 길거리에서 울고 싸운 것을 서로 민망해하면서, 이것도 여행의 일부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여느 가족들의 싸움이 그렇게 흐지부지 끝을 맺듯이 말이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끝이 나고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엄마를 공항에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영국의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다. 다시 엄마를 혼자 비행기에 태워 보내려니 미안한 마음과 걱정이 들었다. 엄마에게 세세한 정보들을 알려주고, 비행기에 탄 후 연락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는 비행기에 타기만 하면 한국으로 바로 갈 테니 그다음은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를 안심시켰다. 우리는 공항에 앉아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지난 이주 동안 찍은 사진들을 같이 구경했다. 사진 속 우리는 매 순간 웃고 있었고 유럽의 여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모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엄마, 조심히 가. 나는 며칠 있다가 한국으로 갈게."
"응 너도 조심히 잘 있다가 가. 독일에 도착하면 연락하고"
그리고 엄마는 다시 큰 가방을 홀로 들고 게이트 사이로 걸어갔다. 나는 엄마가 사라진 후에도 멍하니 게이트 앞을 서성이다가 엄마에게 비행기에 탔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홀로 짐가방을 들고 다시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다. 그 사이 엄마에게 한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공항에는 아빠가 엄마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제는 내가 무사히 독일에 돌아갈 일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짧은 비행 후에 나는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짐을 챙기고 입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나서자, 익숙하고 그리웠던 얼굴이 보였다. A였다. 그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기자 마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 정말 엄마랑 좋은 시간만 보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싸우기까지 할 줄은 몰랐어."
"엄마도 같은 마음일 거야. 그리고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실 거야. 그리고 정말 수고 많았어. 나라도 부모님이랑 단둘이 유럽여행을 할 엄두는 나지 않는걸. 대단해, 나의 용감한 관광객 아가씨."
그토록 엄마한테 듣고 싶었던 그 말을 그에게 들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 수고했다는 말이 뭐길래 나는 엄마와 다투어야 했으며, 엄마는 그 쉬운 말을 왜 못 해주었을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야. 미안한 마음은 다시 한국에 가서 엄마랑 좋은 시간을 보내면 돼. 하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3일간의 시간은 내거니까 이제 우리 생각하자"
"그거 알아? 너는 정말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Ja, das bin ich(그럼, 그게 나야)"
엄마와의 여행이 8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종종 그때의 사진을 꺼내어 본다. 사진 속 엄마는 지금보다 젊었고 활기차 보인다. 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 엄마와 다툰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지만, 조금 더 철없던 나와 기력이 조금 더 좋았던 시절의 엄마와의 한 편의 추억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지난 사진을 꺼내보며, 다시 엄마와 유럽 여행을 가는 날을 꿈 꾸어 본다. 그때는 급작스레 남자 친구를 소개할 일도 없으니, 조금 더 수월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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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독일, 이방인으로 다시 서기
한국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다 어느 날 마음이 펑하고 터져버린 저자는 문득 새로운 경험을 찾아 독일로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어렵게 찾은 보금자리에 들어선 순간 남자들이 우글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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